간병인과 실버

94세 실버의 간병인은 72세 실버
전철 경로석 세 자리의 가운데 실버가 실눈으로 떴다가 감았다 하더니 휠체어를 밀고 들어오는 두 여인을 한참이나 훑어본다. 양보해야 할까 말까 계산했을 것이다. 봉을 잡고 서 있으려는 키 작은 여인에게 자리를 권한다.

약간의 훈풍으로 풀렸다가 추워져 겨울이 흔들리며 가는 2월 중순 털목도리 옷이 무거워 보인다.

전철 경로석 세 자리의 가운데 실버가 실눈으로 떴다가 감았다 하더니 휠체어를 밀고 들어오는 두 여인을 한참이나 훑어본다.

양보해야 할까 말까 계산했을 것이다. 봉을 잡고 서 있으려는 키 작은 여인에게 자리를 권한다.

자리 좀 비켜 서 달라고 주문하며 경로석 옆자리에 휠체어를 고정한다. 휠체어 운전에 노련함을 보이며 브레이크를 채운 후 실버의 모자를 바르게 고쳐 씌운다.

“여기 앉으세요.”

“아니 괜찮아요. 나는 젊어요.”

실버끼리 드물게 호의를 베푸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동행한 그들은 지극정성 다하는 모녀처럼 옷매무새를 바르게 손본다. 자리 내준 실버는 멀찌감치 문 앞으로 가서 내릴 자세다.

노신사가 자리 가운데로 이동하니 여인은 미안한 듯이 난간에 엉덩이만 살짝 걸쳐 앉는다. 관상은 볼 줄 모르나 쉼 없이 열심히 살았을 것 같다는 선입견에 시선을 얼른 피했다.

관리하며 다듬은 화려한 냄새는 나지 않았고 나이가 많아 보인다. 부은 얼굴은 딸이고 보호자는 늙은 친정어머니로 보였다. 듣고 보다가 멍해진 머리가 발동이 걸린다.

“도대체 연세가 어떻게 되기에 젊다고 하셨어요.”

“일흔둘이에요.”

“중국에서 왔어요. 마스크가 어디 있어요. 마스크도 안 쓰고 먼지 구더기 공장에서 얼굴 가꾸지도 않고 일만 했지요.

돈도 모으지도 못하고 지금은 돈을 줍고요. 나는 간병인인데 저 어른과 둘이서 9년 같이 살았어요. 94세 어른은 내 얼굴보다 주름도 없는데 나더러 90 넘었느냐고 자리 양보하는 사람이 많아요.

내 마음은 아직 50이어요. 아들은 일 그만하고 중국으로 들어오라고 자꾸 해요.

딸도 일 그만하라고 하고요. 처음 만났을 때는 잘 걸었는데 휠체어에 앉는 순간부터 걸음은 안 걷겠다고 해요. 밥은 암죽으로 먹고, 말은 안 하지만 다 알아들어요.”

그는 두 사람의 예민한 서러움을 섞어 내놓는다. 천사의 모습이기에 사진 한 장 찍어도 되겠느냐 허락받아 찍고 보여주니 그에게 우리 사진 찍었다고 조용히 말하면서 웃는다.

나이가 몇인데 젊다고 했느냐 툭 던진 말에 수줍고 다정한 표정으로 쉼 없이 말했다. 어디에선가 인생을 탄식하는 이야기 나눠봤기에 다음 질문이 뭔지 알고 있다는 듯이 짧은 시간에 혼자 술술 다 풀어 놓는다.

나이도 얼마 안 되었는데 늙어서 미안하다면서 화장도 할 줄 모른다고 분 바른 얼굴을 어색한 듯 연거푸 쓸어내리고 손빗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겸연쩍어했다.

간간이 휠체어 실버의 자세를 고쳐 주거나 머플러를 바르게 다독이며 간병인의 역할에 성심을 보였다.

어디 다녀가느냐 묻자 휠체어 끌고 밖으로 구경 나왔다며 두 여인 삶의 에세이 일과 보고를 간략하게 한다.

“눈 뜨면 나가자고 해서 전철 여행을 해요. 지금은 삼성 병원에서 잠깐 놀다 오는 거예요. 집에 있기 싫어해서 나가자며 조르고 충청도 서산이 고향이었는지 서산에 가자고 해요. 몇 번씩 전철을 갈아타고 돌아다니며 안산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에요.”

바꿔 타야 한다며 수시로 정거장 확인하고 서둘러 내린다. 휠체어 손잡이와 나란히 등허리 굽혀 밀고 나가는 왜소한 모습이 힘에 부쳐 보인다.

강희순 기자  hisuni@silvernet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