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들어 더욱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열성적으로 찾아다니며 나만이 고집했던 도덕관념들을 깨부수는 노력을 하고 있다.
내가 변해야 한다고 말은 쉽게 하면서도, 사실은 아들에게, 딸에게, 사위에게, 며느리에게 바랄 것 다 바라면서 그들에게 나 자신이 정해놓은 도덕적 선을 꼭 지키라며 줄기차게 버티어 왔다.
자식들이 나의 그 엄격한 지침들에서 한가지라도 지켜주지 않으면 때론 섭섭하고 괘씸해서 상처받고 눈물도 많이 흘렸다. 낙장불입(落張不入) 같은 내 도덕 개념은 도대체가 해결방법이 없었다. 홀로서기 연습을 아무리 해봐도 젊은 그들의 가족관을 이해하기란 절대 쉽지만은 않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실제로 나 자신을 바꾸지 않으면 우선 내가 견디기 어렵다는 사실을 터득하고 고뇌하던 중, 호주 (시드니) 사는 아들네와 딸네 집에 번갈아 가며 한해를 함께 살기로 하고 우선 동거하며 부모와 함께 살아서 좋은 일이 더 많다는 걸 보여 주기로 했다.
먼저 아들네와 동거하다 보니, 내 아들이 자기 와이프를 위해 매사에 대접하며 사는 모습이란 상상을 초월했다. 딸네 하고는 정 반대 분위기다. 그도 그럴 것이 물론 큰아들과 큰며느리는 얌전히 서울에서 잘살고 있지만, 호주에 사는 아들은 막내아들이고 며느리는 서양 여자다. 그런데 이 서양 여자 비위 맞추기가 여간 문제가 아니다.
직장에 나가야 할 아들이 먼저 일어나서 와이프에게 커피 서비스를 해야 하고 집 안 청소는 아들이 몽땅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 돌보는 시간 역시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자기 처를 애지중지(愛之重之)하는 걸 보면 나도 서양에서 태어났더라면! 하고 속으론 은근히 부러웠다. 다문화와 세대 간 차이가 참으로 엄청나다.
이 상황에서 고고하게 침묵만 지키고 누구 탓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외국에서 대한민국 기업의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아들을 정신적으로 신경 어렵게 하면 아들 회사가 문제가 될까 두려워, 이왕이면 마음 편하게 해주고 싶어 내 온 힘을 다해 며느리 봉양을 하니 가족과 민족 간에 평화의 문이 열린다.
나는, 어차피 변화하려면 야심차게 변하기로 팔 걷어붙이고 나섰다. 나 혼자서 동양 예절 문화만 지키려다간 나만 사면초가(四面楚歌) 틀에서 헤어나기 어려우니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섰다. 내 남편 때문에 나는 한국식으로 아침 일찍부터 남편 음식 대접하고 차(음료)까지 대접해 드려야 하지 않는가.
이왕지사 하는 일 그 프로그램에 아들 며느리 손녀 할 것 없이 먹거리 서비스에 가속도를 달았다. 그리고는 며느리에게 한국 음식 맛 어때? 하고 평가까지 받으며 친절하게 베풀어 주자 “한국 엄마 원더풀”을 외치며 “엄마 맛있는 것 또 해주세요” 하며 수시로 와인 서비스에 뽀뽀 공세까지 펼친다. 아들은 자기 처도 동양문화 따라오느라 무척 힘들어한다며 “어머니가 좀 도와주세요”하고 부탁하는 아들을 뒤로하고 “알았어 글쎄 알았다니까”하고 염려 말라며 우리는 귀국했다.
그 후, 요즘 나는 ‘바리스타’ 학원까지 다녀서 자격증을 받았고, 며칠 있으면 한 종목 더 자격증을 따낸다. 원두커피만 먹는다고 폼 잡으며 시어미를 주눅들게 하던 큰 며느리도 “어머니! 저도 이런저런 기술 좀 가르쳐 주세요” 하며 한 발짝 더 가까이 온 느낌이다.
호주에서 딸과 사위는 바리스타가 만든 커피 좀 빨리 맛보고 싶다고 여행길을 유혹하고, 나의 음식 서비스를 많이 받아본 서양 며느리는 “와우! 한국 바리스타 엄마 빨리 호주로 또 오세요” 하며 카톡으로 언제 오느냐고 재촉까지 한다. 세대 간 민족 간 문화 차이를 내 가족 봉사 정신으로 풀어낸 셈이다. 내가 억지로 다가가지 않아도 서비스란 가슴을 활짝 열고 보여주니 그들이 웃음까지 안고 다가온다.
앞으로 시간이 되면 빵 만들기와 서양 요리도 배워서 그들에게 멋지게 서비스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들이 먹던 빵보다 더 새로운 건강식 빵으로, 커피 향과 접목해주고, 집 안 청소나 허드렛일까지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노력해 주면 내 마음 안에 젊은 가족의 열기가 풍성하게 자리매김하리라.
문지영 mun99056@silvernet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