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인 사랑의 삼각관계를 주축으로 한 스토리가 고전적인 오페라의 플롯을 연상시킨다. 부와 사랑 사이에 갈등하는 여인이 비극적인 사랑에 빠져든다. 그러나 정작 저스틴 채드윅 감독은 튤립 피버의 현대적 정취를 거듭 강조했다. 시대적 특수성 때문이다.
‘골든 더치 에이지’라고 불리는 17세기 네덜란드는 튤립과 혼인 등 교회가 거래를 금한 ‘신성한 아름다움’이 자본에 잠식당한 시대다. 동인도 회사가 동방 무역을 독점하면서 암시장이 발달하고, 향료·도자기·튤립 모종에 투자한 사람들은 막대한 부를 쌓았다. 희귀한 모종일수록 값이 천정부지로 솟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도박처럼 튤립 경매에 빠져들었다. 벼락부자가 된 상인들은 가난한 집안에서 신붓감을 사들이고 허영 가득한 초상화를 주문했다.
수녀원에서 자란 ‘소피아'(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이러한 사회 풍조에 순응한 여성이다. 보육원의 동생들을 후원해주는 대가로 아버지뻘인 거상 ‘코르넬리스'(크리스토프 왈츠)와 결혼한다. 수녀원장은 ‘결혼은 안전한 피난처’라며 팔려가는 새신부를 축복한다.
코르넬리스와 소피아는 결혼한 지 3년이 되도록 후사가 없다. 코르넬리스의 친구는 지불한 값을 못하는 소피아를 버리고 새 신부를 사 오라고 부추긴다. 그러나 어린 아내의 아름다움이 아까운 코르넬리스는 반년을 더 기다리기로 한다.
어느 날, 코르넬리스는 부와 어린 아내를 과시할 초상화를 그리기로 한다. 실력보다 그림값이 저렴하다고 소문난 ‘얀'(데인 드한)을 불러들인다. 얀과 소피아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격정적인 감정에 어쩔 줄 모른다. 한 번의 변덕이라 생각했던 사랑이 마치 튤립처럼 만개한다. 얀은 그녀와의 도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붓을 버리고 튤립 경매장으로 향한다.
전체적으로 17세기 유럽의 낭만과 사랑의 삼각관계, 가난한 예술가와의 로맨스 등 시대물의 팬층이 열광할만한 소재로 가득하다.
데인 드한과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연인 캐스팅으로 국내에서도 실시간검색에 오르는 등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저스틴 채드윅이 가장 반색한 캐스팅은 코르넬리스 역의 크리스토프 왈츠다. 뚜껑을 열어보니 얀과 소피아 커플보다는 코르넬리스와 소피아 커플이 스토리의 주축을 담당한다.
드라마틱한 배경과 소재에도 불구하고 중반부터 밋밋해진 연출 탓에 후반부 클라이맥스의 임팩트가 부족하다. 이렇다 할 악역이 없는 데다 수많은 조연의 난립으로 전개가 산만한 느낌을 준다. 튤립 피버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스토리나 연기보다는 17세기를 재현한 미술·의상·조명 등 시대의 낭만이 살아있는 영상미다. 명암 대비를 극대화한 당대의 화가 베르메르·렘브란트·프란스 할스의 화풍을 영상으로 재치있게 옮겼다.
극 중 반복 등장하는 모티프 중 하나는 ‘배너티,’ 삶의 무상함이다. 코르넬리스의 가족 초상화 속 꽃과 해골, 지구본은 아름다움과 삶의 덧없음, 그리고 권력을 상징한다. 배니타스 정물화의 정석이다.
영화 ‘튤립 피버’의 자세한 리뷰는 통통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12월 14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