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끼리, 사람 죽인 죄로 섬 유배되다
태종실록 21권에 일본 국왕이 조선에 코끼리를 바쳤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정확히 언제 보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또 태종실록 24권에는 이런 기록이 나온다.
“전 공조 전서(工曹典書) 이우(李瑀)가 죽었다. 처음에 일본 국왕(日本國王)이 사신을 보내어 순상(馴象)을 바치므로 3군부(三軍府)에서 기르도록 명했다. 이우가 기이한 짐승이라 하여 가보고 그 꼴이 추함을 비웃고 침을 뱉었는데, 코끼리가 노하여 밟아 죽였다”
여기서 순상이라고 하면 길들여진 코끼리를 말하고, 공조 전서라고 하면 건축, 산림, 공장 등을 담당하는 지금으로 말하면 건교부 장관쯤 되는 자리다.
당연히 장관급 고위 관리를 밟아 죽인 사고가 발생하자 조정이 발칵 뒤집혔던 것은 불문가지다.
태종실록 26권에는 그 처분에 대한 기록이 등장한다.
“일본 나라에서 바친 바 길들인 코끼리는 이미 성상의 완호(玩好)하는 물건도 아니요, 또한 나라에 이익도 없습니다. 두 사람을 다쳤는데, 만약 법으로 논한다면 사람을 죽인 것은 죽이는 것으로 마땅합니다. 또 일 년에 먹이는 꼴은 콩이 거의 수백 석에 이르니 청컨대, 주공(周公)이 코뿔소와 코끼리를 몰아낸 고사(故事)를 본받아 전라도의 해도(海島)에 두소서”
임금은 웃으면서 그대로 따랐다고 한다.
코끼리가 마지막 머물렀던 곳으로 알려진 장도의 부속섬 목섬
◇ 섬에서도 행복하지 못했던 코끼리
전라도 해도, 지금의 전남 보성군 장도리에 속하는 부속 섬으로 현존한다.
섬의 형태가 노루와 비슷하여 장도(獐島)라고 불렸다.
어찌어찌해서 전라도까지 내려온 코끼리는 천신만고 끝에 다시 배를 타는 신세가 된다.
생각해 보라. 그 큰 덩치의 코끼리를 실으려면 얼마나 큰 배가 필요했겠는가?
타지 않으려는 코끼리를 싣기 위해선 강압적인 방법이 동원됐을 것이다.
해도로 갔던 코끼리는 어찌어찌 해서 장도의 부속 섬인 목섬이라는 곳에 정착한다.
그러나 코끼리는 이 곳에서도 행복하지 못했다.
사실, 지금처럼 먹을 것이 풍부하지 않았다. 코끼리는 날이 갈수록 수척해지기만 했다.
바다에서 해초를 뜯어 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결국 장도 부근의 부속 섬을 이곳저곳 떠다니다가 정착한 곳이 목섬이다.
그러나 이 곳도 여의치 않았다.
가뜩이나 먹을 것이 부족한 섬 사람들로서는 조정에서 내려보낸 코끼리가 엄청나게 많은 식량을 먹어치우자 큰 부담을 느꼇을 것이라는 것이 보성군 문화 해설사들의 설명이다.
장도 부수마을에 그려진 코끼리 벽화
주민들은 마침내 상소문을 올리기에 이른다.
코끼리가 고향을 그리워하는지 식음을 전폐한 채 울고만 있다는 것이다.
태종실록 27권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길들인 코끼리[象]를 육지(陸地)로 내보내라고 명하였다. 전라도 관찰사가 보고하기를, “길들인 코끼리를 순천부(順天府) 장도(獐島)에 방목(放牧)하는데, 수초(水草)를 먹지 않아 날로 수척(瘦瘠)하여지고, 사람을 보면 눈물을 흘립니다” 하니, 임금이 듣고서 불쌍히 여겼던 까닭에 육지에 내보내어 처음과 같이 기르게 하였다.
마침내 코끼리는 섬을 벗어나게 됐고, 섬 사람들로서는 먹보 코끼리를 내보내게 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리라.
이후 코끼리는 전라도와 경상도 이곳저곳을 떠돌았다 한다.
코끼리가 유배된 섬 장도.
지금은 코끼리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장도 섬 부수마을에 최근 전라남도가 진행 중인 가고 싶은 섬 사업의 하나로 그려진 벽화만이 코끼리 흔적으로 유일하다.
코끼리가 유배된 장도는 그만큼 척박한 곳이었다.
적어도 최근까지만 해도 그랬다.
◇ 기적…꼬막이 보물섬으로 바꿨다
꼬막을 잡기 위해 고안된 ‘뻘배’
그러나 이곳을 보물섬으로 바꿔놓은 존재가 있으니 바로 여자만(汝自灣)의 꼬막이다.
장도 주변의 바다는 얕은 펄 지대로, 인근 벌교에서 팔리고 있는 대부분의 꼬막은 이곳에서 생산된다.
벌교 꼬막이 유명하지만, 실상은 알고 보면 장도리 여자만에서 잡히는 꼬막이다.
여자만은 여자도와 장도가 있는 만을 일컫는다.
장도리 앞의 갯벌은 전라남도의 갯벌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섬사람들은 나무로 된 납작한 ‘뻘배’를 타고 저 먼바다까지 나가 꼬막을 채취한다.
장도의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는 뻘배의 존재는 국가 중요어업유산 2호로 지정됐다.
꼬막은 크게 참꼬막과 새꼬막 피꼬막 등 세 종류가 있는데, 현지인들은 참꼬막을 시장에서 사 집에서 직접 요리해 먹는다.
◇ 꼬막 정식 이야기
원래 식당에서 팔리고 있는 꼬막 정식이란 메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장도 출신의 한 부부가 벌교에서 작은 식당을 열었다.
젊은 부부는 고심을 하다가 고향의 음식 꼬막을 주재료로 한 메뉴를 내놨고 그게 히트를 했다.
실제 장도 사람들뿐만 아니라 벌교, 보성 사람들까지 꼬막은 그때까지만 해도 김치처럼 겨울마다 먹는 반찬에 불과했다.
그 꼬막을 메뉴로 만들어 판 부부 덕분에 지금의 꼬막 정식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꼬막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한다.
한집에 하루 100㎏은 거뜬히 잡았다는 꼬막이 지금은 급격히 줄었다.
◇ 꼬막만 있나…왕새우도 있고, 걷기도 좋다
그러나 꼬막이 줄어든다 해서 그리 아쉬워할 일은 아니다.
장도에는 꼬막뿐만 아니라 맛있고 아름다운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섬에는 왕새우 양식도 성업 중이라 신선하고 맛난 왕새우를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또 우수한 갯벌 자원의 보유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람사르습지와 갯벌세계유산도 추진 중이다.
우선 가고싶은 섬 사업으로 섬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비경을 지닌 13.8㎞의 걷기 길이 탄생했다.
이 길은 조금 걷다 보면 아름다운 해안 절벽 길과 숲길을 번갈아 접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그늘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여수 금오도 비렁길 뺨친다.
◇ 잘 곳과 먹을 곳
절대적으로 부족한 게 잘 곳과 먹을 곳이다.
사실 민박집이 없다. 그리고 식당도 없다.
지금까지 장도는 관광지라기보다 꼬막을 채취하는 섬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부수마을에 게스트하우스가 완공됐다.
인근 대촌마을에도 내년에 게스트하우스 한 곳이 더 생긴다.
단체 관광객들도 이젠 얼마든지 장도를 찾을 수 있다.
게스트하우스 1층에는 마을 식당도 문을 열 예정이다.
내년 봄쯤에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내놓은 찰진 메뉴를 구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 주민들 사이에서 “민박집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공감대도 생겨나고 있다.
그 전까지는 이장 등을 통해 민박집을 소개받으면 된다.
동네 사람들이 가정에서 먹는 가정식 백반을 먹을 수 있다. 어쩌면 지금이 장도 여행의 최적기일 지도 모른다.
◇ 가는 길
벌교에서도 30여 분을 더 달려 상진항으로 갈 수 있다.
상진항에서는 고작 차량 4대만을 태울 수 있는 배가 요즘 같으면 오전 7시와 오후 2시 상진항을 출발하는데, 물때에 따라 출발 시간이 달라진다.
대부분 주민들이 뭍에서 구한 쌀과 부식 등을 실은 차들이 실린다.
섬에 차를 갖고 들어가는 것이 힘든 이유다.
차를 갖고 들어간다 하더라도 나오는 것도 순번제로 나올 수밖에 없다.
차를 갖고 들어가면 못 나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벌교읍 우주마트 앞에서 오전 6시 30분과 오후 1시 30분 상진항으로 가는 셔틀버스가 출발한다.
버스에는 섬 주민들이 섬에서 구한 쌀과 부식 등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 오히려 정겨움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이러한 섬 주민들의 삶에 녹아들어 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배 운항과 차량 정보 등은 섬 이장에 물어보면 잘 알 수 있다. (☎ 부수마을 박형욱 이장 010-7604-1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