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특례 업종에서 빠진 지방의 버스 운전기사들이 임금감소를 걱정해 서울 등 대도시로 몰리고 있고 기업들은 앞으로 예상되는 생산차질을 어떻게 막을지 몰라 애태우고 있다. 정부는 혼란을 최소화한다며 근로시간 산정 기준 등을 발표했지만 현장의 피해를 줄이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정치권과 정부가 기업의 생산 활동과 근로자의 임금 등 실용적 측면보다 ‘저녁이 있는 삶’이란 달콤한 명분에 현혹돼 빚어진 현상이다. 아무리 일감이 넘쳐나 일을 하고 싶어도 주 52시간 이상은 불가능하고 좋든 싫든 정부가 마련해준 저녁이 있는 삶을 누려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장시간 근로를 줄여야 한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근로시간을 갑작스럽게 줄일 정도로 사회문제가 되고 우리의 삶이 팍팍해졌는지는 의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장시간 근로는 기업의 탄력적인 인력 운영을 도와주고 근로자들의 실직을 막아주는 완충 역할을 해 왔다.
경기가 위축되면 근로시간 단축과 워크 셰어링(일자리 나누기)을 통해 고용 안정에 기여했고, 경기가 회복하면 신규 채용 없이 연장 근로를 통해 생산 물량을 소화해 왔다. 기업과 근로자는 물론 많은 경제학자가 근로시간 단축에 반대해온 이유다.
이웃 일본에서도 장시간 근로가 사회적 논란거리다. OECD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일본의 연간 근로시간은 1719시간으로 우리나라(2113시간)보다 400시간 정도 짧지만, 장시간 노동자 비율은 우리나라보다 많은 편이다. 주당 60시간을 초과하는 근로자 수가 매년 일본 전체 임금 근로자의 10%(550만명) 안팎에 달한다(일본 총무성 자료).
그럼에도 평균 근로시간이 우리나라보다 400시간 정도 짧은 것은 파트타임 근로자 등 단시간 근로를 하는 비정규직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회예산정책처가 작성한 ‘2016년 6월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근로시간 단축 적용이 되는 근로자는 806만3000명이고 이 중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근로자 비율은 11.8%(95만5000명)였다.
그럼에도 일본은 정치적 명분이나 인기보다는 기업의 경쟁력과 생산 활동을 우선시해 근로시간 대책을 세워왔다. 최근 중의원 본회의를 통과한 ‘일하는 방식 개혁’ 내용을 보면 연장 근로시간은 월간 100시간까지, 연간 720시간까지로 제한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노사가 합의하면 무제한 할 수 있었던 연장 근로에 상한선을 둔 것이다. 그런데도 연장근로 허용 시간은 우리보다 두 배나 많다.
우리나라의 연장근로 허용 시간은 주당 12시간, 월간으로는 52시간이다.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는 탄력적 근로제(일본은 변형 근로 시간제) 단위 기간도 우리나라는 3개월인 반면, 일본에선 6개월까지 허용하고 있다.
2013년 일본 후생노동성 근로기준국을 방문했을 때 만난 공무원에게 “왜 연장 근로시간을 법으로 규제하지 않고 노사 자율에 맡기느냐”고 묻자, “기업의 장시간 근로는 생산성과 고용을 위한 것인데 법으로 강제할 필요가 있느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기업과 국민을 바라보는 일본 정부 관계자의 시각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 가운데 싱가포르·홍콩은 우리나라보다 근로시간이 길고 대만은 비슷하다. 주당 16시간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정책 실험이 곧 시행된다. 기업, 국민과 함께하는 정부라면 뒤늦게라도 보완책 마련을 서둘러 현장에서 벌어질 민생 경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윤기설 (한국좋은일자리연구소장)
전 한국경제신문 노사문제 대기자
전 한국폴리텍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