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밴드의 산 증인 신관웅을 만나다

한국 재즈 음악의 산증인이자 재즈 1세대를 대표하는 재즈피아니스트 신관웅(70). 6살 때부터 꿈을 실현하고자 부단한 노력 끝에 우리나라 최초의 빅밴드를 구성했다.
인문콘서트에서 신관웅 씨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 : 인문예술 콘서트 제공]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예술가의 집에서 그의 재즈 인생 이야기를 소재로 한 인문 콘서트가 열렸다.

 

파란만장한 재즈인생을 피아노 연주와 함께 차우진 음악평론가와 질의응답식으로 진행했다. 신관웅 씨는 피아노를 배울 때 어려웠던 점을 “충남 비인 의 작은 초등학교에서 피아노에 대한 꿈이 시작됐습니다.

 

교장으로 계셨던 부친의 덕으로 풍금을 접할 수 있었고 피아노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나마 풍금을 접할 수 있었던 것도 큰 행운이었죠. 그런데 그 풍금은 한 옥타브가 없었습니다. 부친이 돌아가시고 가세가 기울어진 상황에서 피아노 수업은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다.

 

차우진 음악평론가(좌)와 신관웅 재즈피아니스트가 질의응답 식으로 대담을 진행하고 있다.[사진 : 인문예술 콘서트 제공]

신 씨는 피아노 공부의 어려웠던 점을 “밤을 밝힐 양초가 없어 호롱불 아래에서 악보를 익혔고 때로는 달빛을 벗 삼아 공부했습니다. 당시 촛불은 부잣집에서나 켤 수 있었다”고 하며 재즈의 길을 가게 된 사연에서 “저는 이야기를 잘 못 합니다. 그러나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하자면 까마득한 옛날이야기입니다. 고등학교에서는 음악대학을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당시 한동일 씨를 모델로 생각했다”고 했다.

 

이어서 “한 씨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주한 미군 사령관의 후원으로 미국에 가서 공부했다고 들었습니다”라고 하며 재즈를 배우게 된 동기를 “저는 가세가 기울어진 상태라 클래식 공부를 접어야 했습니다. 그러다 아르바이트로 미8군에 갔다가 흑인 미군 병사의 피아노 연주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연주를 보는 순간 아! 이거다, 내가 추구하는 것이 저거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연주활동을 해오며 어려웠던 질문에 “처음 연주활동은 순탄치 못했습니다. 당시 꿈은 무대에 한 번 서는 게 꿈이었습니다. 배운 걸 활용할 곳을 찾다 카바레에 가서 ‘무료로 연주하겠노라고 간청’하여 허락을 받았죠. 그러나 사장이 ‘당신들 연주는 연습 형이고 댄서들이 음악에 꼬여서 안 되겠다’고 하여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당시 미8군에서 같이 활동했던 가수로는 최희준, 박형준, 위키리 등이 있습니다.”

 

사회자가 빅밴드에 관해서 설명을 요청하자 신 씨는 “재즈가 탄생할 때 블루스와 랩이 시작됐습니다. 당시 흑인들은 블루스를, 백인들은 랩 타잎 음악을 즐겼습니다. 당시 블루스는 흑인의 애환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클래식과 재즈를 비교하면 재미있습니다. 클래식은 배가 불러서 노래했고 왕과 귀족들이 즐겼습니다. 반면 재즈는 환락가, 빈민가 등지에서 즐겨 불렀던 곡이기도 합니다.”

 

신 씨는 피아노를 연주 중간에 절친했던 친구를 소개했다. 그는 “같이 재즈를 즐겼다”며 도올 김용옥 씨를 소개했다.

 

김용옥 씨는 인사를 하고 난 후 신광은 씨를 쳐다보며 “재즈로 먹고살 수 있는가?” 하고 물었다. 그러며 “신관웅 선생은 어려운 시기에 음악의 저변확대를 위해 노력한 산 증인입니다”고 하며 옛날에 신관웅 씨에게 써 줬던 헌시를 읽겠다고 하며 신관은 씨를 쳐다보며 “잘 살고있는 거야?” 하고 물으며 헌시를 읽었다.

 

“고적한 서쪽 바다 비인 만 해변의 조약돌 스치는 바람 피아노 건반 울어 하늘의 문을 두드릴 때 재즈의 개벽은 시작되었다. 하늘이 문이 열리고 쏟아져 나온 선율들은 전통의 파괴 자유의 향응 카오즈의 화려한 양연, 그러나 선율을 구성한 콩나물 대가리들은 엄격한 규율에 섰다.” 잔잔한 신 씨의 피아노 연주가 깃들어졌다.

 

헌시 끝에 도올은 “공자는 재즈의 달인, 싯달다의 무아도 재즈, 인제의 살 불도 재즈, 재즈를 모르는 인간에겐 새로운 것이 없다. 재즈는 자유, 소통”이라고 한 후 “두보 군 이 말 하기를 ‘외상 술값 도처에 널브러져 있는데, 인생 칠십 고래희라 그대와 내가 벌써 고희런가 건반 두드리다 어느새 귀밑머리 희어버렸구나 간다 간다. 역사도 가고 우리 봄날도 간다…’ 신관웅의 재즈 세계를 그리며” 도올 김용옥 읊다.

 

관중석에서 한 관람객이 도올에게 노래 한 곡을 부탁하자 낙엽(Auterm leaves)을 멋들어지게 불렀다. 마무리 시간에 신 씨는 “남은 시간을 재즈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이종훈 기자 3210egh@silvernet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