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에 사진이 쭉 늘어서 있습니다.
사진 양쪽에 검은 띠를 사선으로 두른 영정사진입니다.
자신의 영정사진을 받아든 사람들.
만감이 교차합니다.
<현장음> “너무 많이 웃었다.”
곧이어 이어지는 ‘죽음’ 체험.
수의를 입고 유언을 남깁니다.
삶이 다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무엇일까.
평소 쑥쓰러워 꺼내지 못했던 그 말, ‘사랑한다’는 말이 가장 먼저 나옵니다.
<김말순 유언장> “너무나 사랑했다. 엄마가 눈물 흘릴 때마다 너는 ‘엄마 울지마’하고 나의 눈물을 닦아주던 너의 작은 손이…”
<김의숙 유언장> “자식 키우는 기쁨을 느끼게 해줘서 너무나 고맙고 감사한다. 나의 비타민, 나의 자랑스런 아들. 너를 나에게 보내준 신에게 감사한다.”
단순히 행복하게 건강하게 살자는 웰빙을 넘어 어떻게 하면 잘 죽을까를 고민하는 ‘웰다잉’.
자신이 원하는 삶의 마무리를 위해선 주변사람과 ‘관계맺기’가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정용문 / ‘당신도 시한부 인생입니다, 힐다잉’ 저자> “마음 편히 살다 잘 죽는 것은 혼자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가족과 아니면 이웃과 살아가면서 어떻게 살아야 고령화된 이 사회에서 편하게 살 수 있는가 이 얘기를 하고 있는 거죠.”
잘 죽는다는 건 반대로 그만큼 주위 사람과 잘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한 겁니다.
<이도순 / 서울시 용산구> “80이 넘어서 갈때가 됐다 싶으니까 마음이 편하고. 관에도 들어가보니까 마음이 편한게, ‘아 내 안식처가 여기구나’ 싶은게…”
최근에는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으로 회복 가능성이 없는 중환자가 위급상황에도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목숨을 연장하는 조치를 안 받겠다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웰다잉이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온 겁니다.
웰빙을 넘은 웰다잉 시대.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에서 어떻게 잘 죽을 수 있을까로 우리 사회 고민의 방향이 서서히 바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