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형제 종안계(從雁契)

종안계(從雁契)란 이름의 아주 특별한 계모임이 있다. 종안(從雁)이란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 떼가 “우두머리 기러기를 따라 줄지어 날아간다는 뜻이다.

 
지금으로부터 1세기 전, 일제 강점기에 내 증조부 아랫대 조부 5형제분이 나락(벼)한 열섬씩 출자하여 종안계를 창계(創契)한 후, 집안 길, 흉사 때 벼 한 섬을 무상 지원했다고 한다.

만약 흉년에 식량이 떨어진 형제가 있거나 길, 흉사를 당한 형제에게 종안계가 운영하는 볏섬을 지원하고 이듬해 풍년이 들면 1.5배로 갚았다고 한다. 당시는 요즘 같은 은행이 없었기에 5형제가 운영하는 상조회나 사설 은행 구실을 했다고 한다.

5형제 조부님은 모두 5명의 아들에 16명의 손자를 두셨다. 8.15 광복 후 6.25 전쟁을 겪고, 4.19 혁명 이후에도 농촌은 점점 더 피폐(疲斃)하여갔다, 한정된 땅에서 거두는 벼농사만으로는 먹고 살기 조차 힘들어 대부분 농촌을 떠나 도시로 나가던 시대였다.

그 당시 이미 나의 선대인 16명의 4촌 형제분들은 연로하셨고, 자본인 볏섬도 거의 바닥이 나서 더 이상 계를 운영,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조부님 5형제분 중, 맏이 조부님의 손자(나의 6촌형)가 계를 인수했다, 계원은 4촌 형제에서 범위를 넓혀 6촌 형제가 대전 동학사에 모여 재창계(再創契)했고, 6촌 이내 형제는 26명(일본 거주 4명 제외)이었다. 그러니까 국내 6촌 이내 형제 26명 중에 4명이 작고하여 지금은 22명이다.

계 명칭은 종안계(4촌계)에서 재종안계(6촌계)로 바꿔야 마땅하겠지만, 명칭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자본금은 볏섬 대신 현금 1천 만원( 쌀 100가마 상당 )으로 형제들의 경제적인 형편에 따라 차등 분담했다.

그러나 지금은 계원이 균등(均等하게 월 1만원씩 계금(회비)으로 정하고, 계 운영은 나이순으로 유사(有使)를 맡아 집안 길, 흉사를 살피고 계회 (총회) 장소는 유사가 사는 곳에서 매년 4월에 1박 2일로 만나고 있다.

올해 유사는 서울에 사는 재종제(세영)가 용인 ‘에코 그린’ 팬션으로 초청하여 계모임을 했다. 내년은 부산에 사는 재종제가 유사이므로 부산에서 종안계를 하게 될 것이다.

22명의 종안계원 중, 서열 1위는 희한하게도 맏 조부님의 손자로 기묘년생(79)이다. 6촌 형제 가운데 같은 기묘년생 띠 동갑 5명중에 넷째 조부의 손자인 나는 서열 4위가 아닌 3위다.

신기한 것은 그해 기묘년에 5명의 종동서가 모두 잉부(孕婦)였고, 남편의 연령순서대로 차례로 출산 했다. 더욱 신기한 것은 둘째 조부님의 며느리는 여아를 출산했고, 그는 출가외인에 기묘년 생일도 맨 끝이라 그만 서열에서 제외됐다.

20여년 전 40대 나이 때 처음으로 유사를 맡아 서울에서 행사를 치렀고, 60대 나이에 역시 서울로 형제들을 초청했다. 운이 좋으면 80대 나이에 유사를 한번 더 맡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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