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국립 중앙박물관에서 베트남 영화 주간을 설정하여 무료로 영화를 보여 준 적이 있다. 25년 전에 제작된 이 영화를 보면서 베트남은 우리나라와 무척 비슷한 나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감동도 2배로 느껴지고, 6·25전쟁을 몸소 체험했던 할머니들은 눈물을 훔치는 분들이 많았다.
영화가 시작되면 전쟁이 터지기 전의 베트남 농촌풍경이 천국(天國)같이 펼쳐진다.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도 티 없이 맑고 행복한 표정들이다. 우리 어릴 적 고향 동네를 보는 것 같아 울컥 그리운 감정이 복받친다. 쌀농사를 짓는 것도, 쌀 한 톨이라도 아껴야 한다는 말과 조상님을 잘 섬겨야 한다는 이야기도 우리와 똑같다.
전쟁이 터지면, 군인들이 들어와서 잘 알 수도 없는 사상과 이념을 내세워 젊은이들을 전쟁 속으로 내몬다.
낮에는 남쪽의 군인들이 동네에 들어와 북군에 협조한 사람들을 잡아 죽이고, 밤이 되면 베트콩(북군)이 들어와 정부군(남군)에 협조한 사람들을 잡아다가 죽인다는 것도 우리나라의 6.25전쟁을 생각나게 한다.
여주인공 리리(히엡 티 레)가 전쟁통에 성폭행당하고, 먹고 살기 위하여 도시로 나와 닥치는 대로 ‘밀거래 장사’를 하고, 하녀(下女) 일을 하다가 남자주인과의 불륜으로 임신하여 쫓겨나, 사생아를 낳고.. 마음씨 좋은 미군, 스티브(토미 리 존스)를 만나 결혼하여 미국으로 오지만 남편은 뜻밖에도 ‘전쟁 전문 용병’으로 사람을 죽이는 악몽에 시달리다가 결국 자살하고 만다.
이러한 전쟁의 악몽 속에서도 아이들 셋을 잘 길러 미국에서 부동산업으로 성공한다는 얘기이지만 이 베트남 여인의 정신 상태는 우리나라 어머니들과 비슷하다.
미국인 남편의 전처(前妻)가 남편으로부터 아이들의 양육비를 받아내기 위해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과는 달리, 그녀는 자신이 돈을 마련하여 진정한 사랑으로 아이들을 열심히 키운다는 것, 생지옥 같은 전쟁의 와중(渦中)에서도 일부종사(一夫從事)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 아이의 생부(生父)를 찾아주고 효도를 가르치는 마음 등등.. 우리와 너무나 같다.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자포자기(自暴自棄)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는 것은, 그래야만 내세(來世)에 가서도 좋은 생(生)을 살 수 있다는 어머니의 가르침 때문이다.
베트남에 가서 사업을 하지 않을 사람이라 해도 한 번쯤 비디오나 DVD로 볼만한 영화이다. 배우들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토미 리 존스’, ‘색, 계’의 ‘조안 첸(어머니역)’등 낯익은 얼굴들이 있다.
하나 더 덧붙이면 어머니 역으로 나오는 조안 첸의 이빨이 까맣다는 것이다. 이것은 베트남 여인들과 중국 장족 여인들의 미용술로, 산에서 나는 개미날개(canh kien)를 갈아서 만든 검 황색 물감을 물에 갠 후, 나뭇잎에 발라서 치아에 붙이면 치아가 까매진다.
우리나라 삼국시대 때 해양대국(海洋大國)이었던 백제가 멸망하고 당나라로 끌려간 백제의 장군 ‘흑치상지(黑齒常之)’라는 장군이 있었다.
백제의 담로(식민지), 흑치 국에 총독으로 근무하던 귀족이 흑치(黑齒)라는 성(姓)을 하사받았는데 그 귀족의 후손이 흑치 장군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 흑치국이 대만, 필리핀 등이라는 설이 있었으나 이 영화를 보면 베트남이라는 확신이 선다. 과거 베트남은 백제의 담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풍습과 말도 한국과 같은 것이 많다. 특히 메콩강을 오가는 배 모양은 우리나라 임진왜란때 이순신 장군의 병선, 판옥선과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