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 불사춘!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네!
4월이 오니 수도권에는 개나리도 피고, 민들레꽃도 피고, 백목련도 피었다. 그래서 더 남쪽으로 가면 진달래도 피었으리라는 기대로 제천에서 정선 아우라지로 가는 계곡열차를 타는 사람들이 많았다.

 

수도권 아리수변에는 봄꽃이 활짝 폈다

4월이 오니 수도권에는 개나리도 피고, 민들레꽃도 피고, 백목련도 피었다.

그래서 더 남쪽으로 가면 진달래도 피었으리라는 기대로 제천에서 정선 아우라지로 가는 계곡열차를 타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우라지 관광 A열차

그러나 치악산을 넘어 남쪽 태백산맥 속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꽃은 보이지 않고 흰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조금 더 가면서 높은 산에는 흰 눈이 많이 쌓였고 하늘에서는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높은산에 쌓인 눈

이곳에는 아직 봄이 왔다고 할 수가 없었다.

요즘 유행하는 ‘춘래, 불사춘!(春來, 不似春!)’이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춘래, 불사춘!’이라는 말은 유명 정치인이 한 말이 아니다.

기원전 1세기 중국 전한(前漢)의 궁녀였던 왕소군(王昭君)은 날아가던 기러기도 그녀의 미모에 반해 떨어졌다는 낙안(落雁)의 절세미인이었다.

중국 4대 미인 왕소군

그녀는 오나라 왕비 서시(西施), 삼국지에 나오는 초선(貂蟬)이, 당나라의 양귀비(楊貴妃)와 함께 중국 4대 미인으로 역사책에 기록되었다.

그렇지만 왕소군(王昭君)은 뇌물을 밝히던 궁중 화가의 농간으로 황제의 눈에 띄지 못하고 흉노의 선우(왕)에게 강제로 시집보내진다.

몽골로 시집가는 왕소군

황량한 사막과 쓸쓸한 초원이 펼쳐진 낯선 이국땅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그녀는 외로움으로 몸을 떨었다.

이태백 등 후대의 시인들은 그녀의 심정을 시(詩)로 노래했다. 당나라 때 시인 동방규(東方叫)는 ‘소군원(昭君怨)’이라는 시를 썼다.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自然衣帶緩 非是爲腰身.

(오랑캐의 땅에는 풀도 없고 꽃도 피지 않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

중국 4대미인 양귀비의 무덤

 

(몸이 야위어 허리띠가 느슨해지니 자연히 허리에 맞지 않네)

오랑캐 땅에도 꽃이 피기는 하겠지만 왕소군의 마음은 황량하기만 했을 거란 이야기다.

흉노 땅에 묻힌 그녀의 무덤은 청총(靑塚)이라 해서 겨울에도 풀이 시들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