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Battle of Jangsari, 2019)

과장된 영화 내용의 오해와 진실
장사 상륙작전은 지금 80대 중반 ‘실버’들이 6·25동란 때 학도병으로 참전한 전투이다.

 

장사리 해변으로 향하는 학도병들

이 영화를 통해 70년 전의 한국전쟁을 되돌아보게 된다. 우리나라가 1945년 해방이 되고 한반도 북쪽에는 소련군이 남쪽에는 미군이 진주하여 군정(軍政)이 시작된다. 그러나 미·소 양쪽 진영의 대립으로 남한에서는 좌파와 우파의 싸움이 치열했다.

특히 중학교(당시 5년제) 학생들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선생님들의 사주(使嗾)로 좌익학교와 우익학교로 나뉘어 싸웠다. 서울에서는 광복절 등 국경일에도 우익학교들은 서울운동장에서 좌익학교들은 장충단공원에서 따로따로 기념식을 하였고 따로 시가행진을 하다가 을지로에서 만나 패싸움을 벌였다.

같은 동포 형제끼리 싸웠다

그뿐 아니라 골목길을 가다가도 좌익학교 학생과 우익학교 학생들이 만나면 패싸움을 벌여 피 터지게 싸웠다.

학생들뿐 아니라 정치인들도 서로 싸움만 하고 이권 다툼에 몰두하였다. 북한이 전쟁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남한의 지도자들은 설마 전쟁이 일어나겠느냐며 안이한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1950년 북한군은 소련제 탱크와 기관총 등 신식무기로 무장하고 기습적으로 남한을 공격하였다. 북한군은 하루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2달 만에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갔다. 그동안 서울과 중부지방의 좌익학교 학생들과 멋모르는 젊은이들은 의용군이라는 이름으로 북한 인민군으로 편입되어 어제까지의 이웃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다.

미군이 학도병들을 전장으로 내몬 것같이 표현된다.

한편 우익학교 학생들은 빠르게 후퇴하는 남한 군인들을 따라가지도 못하고 산속에 숨어 도피 생활을 계속하였다. 그리고 9·28 서울 수복 때 국군병영을 찾아가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하였다.

그러나 남쪽의 우익학교 학생들은 낙동강 전투가 교착상태에 빠지고 유엔군이 참전할 즈음에 대거(大擧)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하였다. 특히 대구와 경상도 지방의 학생들은 가족을 지키자는 차원에서 낙동강을 사수하는 전투대열에 단체로 입대하였다.

전투중에 부모님의 편지를 읽는 학도병

그중에서도 학도병 500명이 참전한 다부동전투를 비롯하여 안강전투 영천 포항여중전투 칠곡 낙동강전투 마산 왜관전투 화개전투 장사전투 등지에서 목숨을 내놓고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 중에는 외국에서 귀국하여 참전한 학생들도 있었다. 인천상륙작전의 양동작전인 장사상륙작전이 이 영화의 줄거리다. 718명의 학도병을 포함 786명이 참전하였다.

이 영화에서는 식량보급이 끊겼다거나 북한군 2개 연대가 퇴로를 막아 거의 전멸하였다는 등 미군의 이기주의와 군 수뇌부의 무관심을 은근히 과대 포장하고 있다는 네티즌의 평도 있다.

장사리 상륙에 성공한다

군의 공식 기록에는 전사 139명, 부상 92명, 적의 포로 40여 명의 손실이다.

 

이 영화는 9월 25일에 개봉하여, 한 달이 넘었지만, 누적 관객 수 1백30만 명에 머물고 있다.

그만큼 6·25동란(同亂)을 기억하는 젊은이들이 드문 것 같다. 그러나 또다시 이러한 전쟁을 막기 위해서라도 좌파와 우파의 싸움을 그치고 북한에 상응하는 최첨단 군사력을 키워야 한다는 평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