쁘띠 프랑스 입장료는 어른 1만 원, 경로 8천 원, 어린이 6천 원이다. 숙박도 가능하고 외국인 관광객도 많다.
거리도 프랑스 같고, 늘어서 있는 프랑스풍의 집에 들어가면 그림, 조각품,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품 중에는 프랑스 국조(國鳥)라고 하는 수탉이 많다. 이 닭들은 프랑스인들이 대왕이라 추모하는 앙리 4세와 연관이 있다. 프랑스가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던 시절에 백성들은 못 먹고 못살았다. 특히 16세기 후반, 개신교와 가톨릭의 종교전쟁 시절에 국민들의 삶은 피폐(疲弊)해졌다.
이때 왕이 된 앙리 4세는 프랑스의 종교전쟁을 종식하고 ‘나는 프랑스의 모든 백성이 일요일에 닭고기를 먹게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신앙의 자유와 사회적 경제적 개혁의 성공으로 생활이 안정되었다. 프랑스인들은 닭을 좋아하게 되었고 왕을 ‘선량한 앙리’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그것도 잠시, 1610년 앙리 4세는 구교도에게 암살당하고 그의 어린 아들 루이 13세가 왕위에 오르고 왕비 마리 드 메디치가 섭정을 한다.
이때부터 귀족들은 방탕하고 사치한 생활을 시작한다. 루이 16세에 이르러 귀족들의 허영과 사치는 극에 달한다. 쁘띠 프랑스에도 사치하고 화려한 그들의 생활상이 많은 조각품으로 전시되어있다.
드디어 1789년 프랑스 시민혁명이 일어나 왕정이 폐지되고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시민들이 공화정(共和政)을 수립하였지만,
우파(지롱드 당)와 좌파(자코방당)로 분열되어 싸울 날이 그치지 않았다.
이러한 정치 상황 속에서 영웅 나폴레옹이 등장하여 프랑스를 평정하고 유럽 전역의 왕국들을 평정하였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제1통령에 취임한 후 1804년 국민투표를 시행하여 99.8%가 넘는 지지를 받아 프랑스 역사상
최초의 황제, 나폴레옹 1세가 되었다.
그 후 프랑스에서는 찬란한 문화와 자유분방(自由奔放)한 예술이 활짝 꽃피게 되었다.
쁘띠 프랑스에는 이 시절의 유명한 작가들의 예술품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앙리 루오의 피에르(Pierre) 등등….
쁘띠 프랑스 근처 북한강 변에는 보트 타는 곳 등 물놀이장과 리조트도 많다.
요즘 리조트에는 가족 단위 3대가 함께 와서 연휴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겨울에는 얼음 낚시터도 많아 특히 남국(南國)의 외국 관광객도 많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