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사> 청풍호 다리를 지나면서, 전해지는 이야기를 듣는다. “본래 이 자리에 있던 다리는 약 삼백년 전인 조선조 중엽에 지어진 야트막한 석조 다리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다리가 축조 후 약 60년이 지난 다음 큰 장마에 떠내려가는 바람에 마을사람들이 힘을 모아 금성천과 중전천이 마주치는 자리에 새로 다리를 놓게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기뻐하며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잔치가 무르익을 무렵, 한 도승(道僧)이 나타나 새로 지어진 다리를 보고는 다리 이름을 [높은 다리]라고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이상히 여기며 까닭을 묻자, 스님은 설명하기를 이 마을은 길지(吉地)이나 삼백년 후면 물이 마을 문턱까지 들어올 것이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마을사람들은 다리 이름을 [높은 다리]라고 부르게 되었고, 마을 이름도 [높은 다리 마을]이 되었답니다.
신비한 도승의 예언은 3백년이 지난 뒤 충주호가 생기며 신기하게 들어맞아 지금은 마을 앞이 물에 잠기게 되었고 마을 앞의 다리는 이름 그대로 높다란 다리가 된 것입니다.”
* 제천 청풍 팔영루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5호)
조선시대에 청풍부를 드나드는 관문이었던 누문이다. 아래는 문이고 위에는 누각의 형태로 되어 있다. 고종(재위 1863∼1907) 때의 부사 민치상이 청풍 8경을 노래한 팔영시로 인하여 팔영루라 불리게 되었다.
* 제천 후산리 고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5호)
청풍면 후산리 105번지에 있었던 민가였다. 조선 말기에 지어진 ㄱ자형의 팔작 기와집이다. 대청의 우측에 2칸 크기의 건너방과, 툇마루를 높이 하고 그 밑에 함실아궁이를 두고 있다. 특징은 제사방이 있다.
+ 제천 도화리 고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3호)
청풍면 도화리에 있었던 민가였다. 조선 말기에 지어진 ㄷ자형의 우진각 기와집이다. 중앙에는 3칸 크기의 대청을 이루고, 좌측 간살은 방, 부엌, 광으로, 우측 간살은 방2칸과 2칸 크기의 부엌으로 되어 있다. (우진각 : 건물 네 면에 모두 지붕이 있는 집)
– 팔영루 문 천정에 재난을 막아준다는 익살스런 호랑이 그림
– 고택에 들어가기 전 황소와 연자방아
– 아버지 성묘 가는 길에 큰 호랑이를 만남 청풍 김 씨(김중명)는 발로 차서 죽여 버리는 용맹에 임금님도 탄복해서 병마절도사(도지사급) 벼슬을 받은 인물이라고 한다.
– 선사시대의 고인돌과 석물군(石物群) 등의 거석문화재
– 한벽루에서 충주호가 한눈에 보인다.
– 망월산성 등산로
*중요한 문화재로는
청풍한벽루(보물 제528호): 고려 때 관아의 연회 장소
금남루(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0호)
금병헌(錦屛軒: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4호)
응청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90호)
팔영루(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5호)
후산리고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5호)
도화리고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3호)
황석리고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4호)
청풍 석조여래입상(보물 546호)
응청각(충북유형문화재 90호)조선시대 청풍부 아문
* 제천 청풍 한벽루 (보물 제 528호)
고려 충숙왕4년 (1317)에 청풍현이 군으로 승격되자 기념으로 세운 관아의 부속건물이었다. 이 누는 석축토단의 자연석 주초석 위에 기둥이 배가 부른 엔타시스 수법을 쓴 층 아래 기둥을 세우고 마루를 설치하였으며,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팔작지붕에 주심포계 양식이다. 누의 우측에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계단식 익랑 (대문간에 붙여 지은 방)을 달았다.
* 제천 청풍 응청각(충북유형문화재 90호)
이 건물의 용도는 알 수 없으나, 본래 한벽루의 좌측에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2층 누각으로 아래층은 토석축의 담으로 벽을 막고, 그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다. 건물 좌측에 목조 계단을 만들어 2층으로 오르내리게 하였다.
* 제천 청풍 금병헌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34호) 청풍부의 청사로 쓰였던 동헌건물이다.
* 금남루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0호)
청풍부의 아문으로 ‘도호부절제아문’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정면3칸, 측면 2칸의 팔각집으로 팔각의 높은 돌기둥 위에 세운 2층의 다락집이다.
* 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 (보물 546호)
이 불상은 높이가 341cm이고, 전체적인 조각 양식으로 볼 때 통일신라 말기(10세기 경)의 작품으로 보인다. 불상의 얼굴 모양은 풍만하고 자비로운 상으로 두툼한 양볼에 인중(코와 입술 사이의 우묵한 곳)이 뚜렷하고 두 귀는 양어깨까지 드리워졌다. 목에는 삼도가 새겨져 있으며, 왼손은 땅을 가리키고 있다. (누가, 언제, 왜, 소원 들어준다는 돌을 올려놓고.., 남녀 따로 한 가지만 소원을 빌어야 들어준다는 검은 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