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리 & 세한정

해마다 정월 달이 돌아오면 임금님 타신 가마 화성으로 행하시네. 가을이 끝날 즈음 배들을 모아 눈 내리기 이전에 다리 이뤘네.

 
새 날개처럼 가지런한 붉은 난간 물고기 비늘인 양 하얀 널판재 가로로 까니 부둣가 저 돌들아 굴러가지 말고 어버이 사랑하는 임금님 마음 천년토록 길이길이 알려 주려마. -배다리를 건너며(정약용)-

조선 정조는 화성에 있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으로 자주 능행을 다녔다. 왕은 배를 타고 건너지 않는다 하여 그때마다 배다리를 설치했다 한다. 나룻배 40척을 띄우고 널판을 얹어 만든 100m는 정조의 효심과 정약용이 설계했던 배다리 모습을 본떠 재현한 것이다.

세미원과 두물머리를 잇는 배다리는 건널 때 이음 부분이 흔들려 출렁출렁 느낌을 살린다.

배다리를 건너고 나올 때 바닥을 보면 화강석 빨래판으로 보도를 만들어 놓은 것은 깨끗한 마음을 갖으라는 의미라 한다.

배다리를 건너기 전 추사 김정희의 걸작 국보 제180호 ‘세한도’를 재현한 5칸 한옥 세한정이 있다. 현판은 송백헌이라 했다. 논어의 글귀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안다’에서 딴 세한도는 제주에 유배당한 추사가 세상 모두 등 돌릴 때 끝까지 신의를 지킨 제자 이상적 한 사람에게 그려준 그림이다. 추사는 영원토록 서로를 잊지 말자 ‘장무상망’(長毋相忘)의 낙관을 찍었다. 담 기둥에 ‘세한정, 약속의 정원’이라 되어 있다.

hisuni@silvernet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