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년 만에 열린 북악산(백악산)

한양도성
68년 1월21일 김신조 등 북한공비의 청와대습격이후 폐쇄되었다가 52년만에 개방되었다는 북악산 북쪽면을 탐사하였다

 

이 북악산에는 조선시대 수도방위를 위해 축성된 한양도성이 있다

 

이 성곽은 이조 초기 태조의 명에 따라 정도전이 백악,인왕,남산,낙산을 연결하는 총연장 18km의 도성이다.

이 한양도성은 4대문과 4소문을 축성했는데 남대문과 동대문 및 광화문도 이 도성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이 성은 조선시대 태조를 시작으로 세종과 숙종으로 이어지는 축성술의 변화과정을 볼 수 있다는데 그 의미가 크다

 

산행은 이 도성을 따라 죽 이어지는데 남산과 북한산의 보현봉이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아직 청와대가 있어 북악산의 앞부분을 개방할 수 없어 뒷면만 봐야한다는점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어여쁜 산아가씨가 붉은 단풍과 노란 은행닢에 매료되었는지 성벽너머 단풍을 찍기 바쁘다

 

1.21사태를 기억할 수 있도록 소나무에 패인 총탄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도 있다

 

요즘 너무나도 풀어져 버린 우리의 안보현실을 뒤돌아 볼 수 있는 현장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상념가운데 어느덧 숙정문을 지나 그 유명한 정치요정 삼청각을 굽어보는 능선에 다달았다.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밀담이 오고갔을까?

그럼에도 오늘날 평화롭고 번영된 우리나라가 된 것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조금더 내려가니 와룡공원이 나타났다

서울 도심의 허파가 되어 청량한 산소공급원이 되고 있다니 마치 생명체를대하듯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와룡공원에는 조선시대의 조경기법인 취병이라는 일종의 식물울타리가 눈에 띄었다

설명은 생기있고 아름답다고 되어있지만 나같은 문외한이 보기엔 그저 대나무로 된 칙칙한 울타리일 뿐이었다

이곳은 야생이 살아있는 듯 산고양이가 많았고 곳곳엔 돌을 쌓으며 정성으로 빌었다는 돌무지가 있었다

이 와룡공원 아래부터 성곽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서울도심의 발전에 따라 한양도성은 여기서부터 멸실된 것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