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임순현 방현덕 기자 =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에서 제출·신청된 2천300여개의 방대한 서류증거를 수백개 덜어내 핵심 쟁점 위주로 신속히 심리하기로 했다.
헌재는 17일 오후 2시 탄핵심판 사건 6차 변론기일을 열어 지난달 26일 검찰이 제출한 ‘최순실 게이트’ 수사자료 등 2천300여개 서류증거를 대상으로 증거 채택 여부를 결정했다.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인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의 피의자 신문조서는 채택했다.
하지만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피의자 신문조서 중 대통령 측이 동의하지 않은 조서는 채택하지 않았다. 대통령 측은 최씨의 신문조서 상당부분을 부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의 조서는 본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맡겨 진술한 임의성(任意性)을 인정할 수 없다고 최씨 측이 주장한 탓에 배제됐다. 검찰의 압박 수사에 따라 진술했기 때문에 증거로 사용하는 걸 동의할 수 없다는 취지다.
대통령 탄핵사유를 밝힐 핵심 물증으로 꼽혔던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의 경우 본인이 검찰 조사나 헌재 증인신문 과정에서 직접 확인하고 인정한 부분에 한해 증거로 채택됐다.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과 구본무 LG 회장, 최태원 SK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의 진술조서도 증거로 채택됐다.
강일원 주심 재판관은 “검찰에서 작성된 진술조서는 원칙적으로 전문증거(傳聞證據·체험자의 직접 진술이 아닌 간접증거) 배제 법칙에 따라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며 “다만 진술 전 과정이 영상 녹화돼 있거나 변호인이 입회해 진행된 진술조서는 증거로 채택했다”고 설명했다.
원칙적으로 ‘진술자가 법정에서 한 진술만 증거로 채택한다’는 전문증거 배제원칙을 적용했지만, 적법한 절차 안에서 이뤄진 검찰 진술조서는 증거로 쓴다는 설명이다.
양측은 미묘한 입장 차를 보였다. 대통령 대리인단은 변론을 마친 후 브리핑에서 “전체적으로 형사소송 원칙을 준용해 만족스럽다”고 밝혔다. 국회 소추위원단은 “기대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 일부의 증거 채택을 두고 양측은 견해를 달리했다.
국회 측은 “수첩의 일부가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더라도 안 전 수석의 신문조서를 통해 다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대통령 측은 “부적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며 일부라도 증거 채택은 부적절하므로 이의신청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헌재가 증거를 상당 부분 추려내면서 탄핵심판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증인들의 잇따른 불출석이나 기일 연기 등은 심리를 지연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국회 측은 일부 증인 신청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헌재는 이날 증인으로 나오지 않은 고영태·류상영씨의 증인신문을 25일 오후 2시로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