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주 작가의 이순신 소설

충청도 사투리 쓰며 백성과 함께한 ‘인간 이순신’과 민초들 그려
충무공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한 대하 역사소설 '이순신의 7년'(작가정신) 일곱 권을 펴낸 정찬주(65) 작가는 8일 광화문 인근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소설을 쓰게 된 배경을 소개했다.

“이낙연 총리 덕분에 나오게 된 소설입니다.”

작가는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산은 산, 물은 물’,  ‘소설 무소유’,  ‘천강에 비친 달’ 등 불교의 큰 인물과 불교적 사유를 다룬 소설·산문으로 이름을 알렸다. 2001년 고향 근처인 화순으로 낙향해 작품 활동을 이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이 있는 이순신 장군 유적에 관심을 갖게 됐고, 소설을 구상하던 중 이낙연 총리를 만났다고 했다.

대하역사소설 ‘이순신의 7년’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에 정찬주 작가

“낙향 후 5년쯤 지났을 무렵 작가로서 멀리서 소재를 찾을 게 아니라 눈앞의 소재를 써야겠다 싶어 이순신 장군에 관한 소설을 구상하게 됐죠. 답사와 공부를 하면서 10년쯤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이낙연 총리가 저희 집을 찾아왔어요. 그때 하신 말씀이 ‘어느 고장을 가든 다 의향(의로운 고향)이라고 하는데, 호남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구체적으로 의향을 알 수 있는 문학 작품이 없다.’는 거였죠. 그래서 제가 ‘이순신에 대해 10여년 연구를 했다. 언제 기회가 되면 소설 집필에 들어가겠다’고 했죠. 그런데 이 분이 어느 날 보니 전남 도지사에 당선됐고, 곧바로 제게 담당 공무원을 보냈어요. 이 소설을 전남도청 홈페이지에 연재하기로 합의했죠.”

그는 “도청에서 소설을 연재한 것은 지자체 최초일텐데, 이 총리가 기자 출신으로 감성이 있었기 때문에 신문에 소설 연재하듯 발상했던 것 같다. 참 어려운 일이고 예산이 있어야 하는 건데 대단하다”며 소설 집필에 들어가게 해준 이 총리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 시작된 연재는 2015년 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1주일에 1회씩 이어졌고, 원고지 8천매 분량의 방대한 소설은 2016년 5월부터 단행본으로 출간돼 이번에 7권까지 마무리됐다.

이 소설은 이순신이 1591년 전라좌수사에 부임한 뒤 1598년 임진왜란 노량해전에서 최후를 맞기까지 과정을 문학적인 상상력을 더해 재구성한 것이다. 흔히 알려진 완전무결한 ‘영웅 이순신’이 아니라 백성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한 ‘인간 이순신’의 삶과 임진왜란 7년 전쟁의 이모저모를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작가는 이 소설의 핵심을 “나, 이순신은 임금의 신하가 아니라 백성의 신하다.”라는 말로 요약한다.

“우리가 대표적인 어머니상으로는 신사임당을 떠올리는데, 아버지상으로는 떠오르는 사람이 없어요. 저는 이순신 장군이야말로 한국인의 아버지상이 아닌가 합니다. 이걸 소설 속에 나름대로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부하 장졸들과 허심탄회하게 막걸리를 마시고 아주 낮은 계급의 부하가 상을 당하면 직접 문상을 하고, 효심도 정말 지극했죠. 애초에 문과에서 무과로 바꾼 것도 보성군수로 부임한 장인에게 내려갔다가 남해안의 왜구들 준동을 보고 백성을 지키는 무관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기 광화문 광장에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는데, 우리 민족은 참 축복받은 것 같아요.”

이순신의 말투를 충청도 사투리로 쓴 것도 백성 곁에 있던 소박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살리기 위해서라고 작가는 설명했다.

“인자 별거 아녀. 오늘 이경만 지나믄 바닷길도 엥간히 항해할 수 있을 겨.”, “송 군관. 유비무환을 물러?” (1권 본문 14쪽) “싸움이 한창 급허니께 내가 죽었다는 말을 당최 허지 말으야혀.”, “내 죽음을 숨겨야 써.” (7권 335쪽)

작가는 “당시 벼슬아치들은 사극에 나오는 근엄한 ‘계급 언어’를 썼지만, 나는 이순신이 백성과 함께한다는 의미로 사투리를 썼을 거라고 봤다. 이순신이 한양에서 태어났다고는 하지만 어머니 고향인 아산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소설의 리얼리즘 측면에서도 사투리를 쓰는 게 맞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소설의 등장인물 대부분은 호남 사람들로, 구성진 호남 사투리를 쓴다.

작가는 구한말 단재 신채호가 쓴 충무공 전기와 이광수가 쓴 장편소설 외에는 이순신에 관한 어떤 소설, 드라마, 영화도 보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만의 상상력이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참고한 두 작품의 영웅주의 사관을 경계하면서 평범한 사람들, 민초들의 이야기를 살려내려 노력했다고 작가는 말했다.

“이순신이라는 굵은 라인으로 흘러가지만, 백성들과 재야 선비, 승려, 노비, 수졸 같은 사람들의 얘기를 굉장히 많이 썼어요. 이들이 받들었기 때문에 이순신 장군이 있게 된 거라고 봅니다. 재야 선비들 이야기는 전라 좌수영 관내 고흥, 보성, 순천 등 지역의 주요 문중 문집들을 참고했어요. 당시 수군을 모집할 때 지방 유지들이 노비들을 많이 보냈고, 이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전쟁을 치러나갈 수 없었어요.”

작가는 소설을 쓰기 전 꼼꼼했던 취재 과정을 소개하며 “직접 배를 빌려 타고 다니며 물살을 살피고 수심을 쟀다. 이렇게 취재한 사람은 이전에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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