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의 한 페이지를 간직한 문화유산들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96년의 세월을 견뎌온 ‘칠곡 구 왜관성당’을 비롯해 한국 영화사의 중요한 작품들인 ‘낙동강’, ‘돈’, ‘하녀’, ‘성춘향’ 등 총 5건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또한, 민족종교 수운교의 교리를 담은 종교화 ‘수운교 삼천대천세계도’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되며 학계와 문화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번 국가유산청의 결정은 한국의 근현대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그 가치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의 일환이다. 특히, 한국전쟁과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근현대사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문화유산들이 국가 차원의 보호를 받게 되면서 보존과 활용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칠곡 구 왜관성당은 1928년, 당시 선교활동을 펼치던 독일 성 베네딕도회의 수도자들에 의해 건립된 예배당 건물이다. 한국전쟁 당시 수도자들이 이곳으로 피난을 오면서, 현재의 ‘성 베네딕도 왜관수도원’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딕 양식을 기반으로 한 높은 첨탑과 반원아치 창호 등 성당 건축의 전통적 요소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역사적·미학적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함께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영화 4편도 한국 영화사의 중요한 지점들을 보여준다. 1952년 개봉한 ‘낙동강’은 한국전쟁 중 창작된 영화로, 전쟁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1958년 개봉한 ‘돈’은 농촌 경제의 부조리를 파헤치며 사실주의 영화로서 의미를 가진다. 1960년 개봉한 ‘하녀’는 인간의 욕망과 공포를 섬뜩하게 표현하며 한국영화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1961년 개봉한 ‘성춘향’은 한국 최초의 컬러 시네마스코프 영화로, 당대 기술적 도약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

특히, 이번에 등록 예고된 ‘수운교 삼천대천세계도’는 불교의 수미세계도 형식을 빌려 민족종교 수운교의 세계관을 표현한 종교화로, 근대기의 화풍을 반영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상·중·하 3단으로 구분된 화면에는 각각 부처, 하늘, 인간을 뜻하는 무량천계, 도솔천계, 인간계가 배치되어 있으며, ‘불천심일원(佛天心一圓)’이라는 교리를 담아낸다. 작품의 상징성과 회화적 특징은 향후 연구 가치가 높다는 점에서 등록이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
국가유산청은 이번 등록을 계기로 해당 지방자치단체 및 소유자와 협력해 문화유산의 체계적인 보존과 활용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한, 등록 예고된 ‘수운교 삼천대천세계도’에 대해서는 30일간의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친 후 문화유산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최종 등록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번 조치는 근현대 문화유산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발굴과 등록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유산의 가치는 단순한 유물이 아닌, 우리의 역사와 정체성을 담고 있는 살아있는 기록이다. 국가유산청의 적극적인 보존 정책이 한국의 근현대사 연구와 문화유산 활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