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존 암 치료의 초점은 암세포를 제거하는 데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최근, 암세포를 정상세포로 되돌리는 새로운 접근법이 등장하면서 치료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국내 연구진이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변화되는 순간을 포착하고, 이를 다시 되돌릴 수 있는 분자스위치를 최초로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는 향후 암 치료법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조광현 교수 연구팀은 정상세포에서 암세포로 변화하는 순간의 ‘임계 전이(critical transition)’ 현상을 포착하고, 이를 분석해 암세포를 다시 정상세포로 되돌릴 수 있는 분자스위치를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고 5일 밝혔다.
임계 전이란 특정 시점에서 갑작스러운 상태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으로, 물이 섭씨 100도에서 증기로 변하는 과정이 대표적인 예다. 연구팀은 암 발생 과정에서도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변화되기 직전, 두 상태가 공존하는 불안정한 임계 전이 상태가 존재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 시점에서 특정 유전자 네트워크의 조작을 통해 세포의 운명을 되돌릴 수 있음을 규명한 것이다.
연구팀은 시스템생물학 기법을 활용해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변화하는 과정에서의 유전자 네트워크를 분석했다. 이를 통해 암화가 진행되는 임계 전이 시점에서 세포를 다시 정상 상태로 돌릴 수 있는 ‘암 가역화 분자스위치’를 발굴했다. 이후 대장암세포에 이를 적용해 실험한 결과, 암세포가 정상세포의 특징을 회복하는 것이 확인됐다.
이번 연구는 단순히 실험적 발견에 그치지 않고, 암 발생의 유전자 네트워크를 컴퓨터 모델을 통해 분석하고, 단일세포 유전자 발현 데이터를 기반으로 체계적인 예측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이는 특정 암종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암의 가역 치료제 개발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조광현 교수는 “정상세포가 되돌릴 수 없는 암세포 상태로 변화되기 직전의 임계 전이 순간을 포착해, 암세포의 운명을 다시 정상세포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 분자스위치를 발굴해낸 것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라며 “그동안 수수께끼로 여겨졌던 암 발생 과정의 내부 메커니즘을 유전자 네트워크 차원에서 상세히 밝혀낸 연구”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신동관 박사(現 국립암센터), 공정렬 박사, 정서윤 박사과정 학생 등이 참여했으며, 서울대학교 연구팀이 대장암 환자의 오가노이드(체외배양조직)를 제공하여 공동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 결과는 세계적 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Advanced Science)’ 1월 22일자 온라인판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