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섭대천(利涉大川)이라는 사자성어에서 ‘이’와 ‘천’을 따와서 이천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학문과 덕을 쌓고 몸을 기르게 되면 천하가 이롭게 된다는 뜻이다. 이름에 담긴 뜻처럼 이천에는 의미 있는 명소들이 많다.이천의 명소 중 하나인 성호호수에는 늘 도자기가 떠있고 연꽃단지로도 이름이 높다.
◇전통문화 계승의 성지, 설봉서원
설봉서원은 옛날 유생의 교육기관으로 쓰였던 서원이다. 입구에 들어서니 어디선가 구성진 민요 가락이 들렸다.
학문을 연구하던 곳에서 노랫소리가 들리니 궁금증을 안고 들어가봤다.
알고 보니 설봉서원에서는 경기민요를 가르치는 수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곳은 전국에서 다섯 번째로 건립된 초기 서원으로서 이천 지역의 전통문화 계승 발전에 있다고 한다. 인재를 키우고자 했던 선현들의 뜻을 이어 지금도 교육기관으로 언제나 열려 있다.
이렇게 마주치게 되는 뜻밖의 상황들이 바로 여행의 묘미일 것이다.
뒤로 돌아보니 기숙사 역할을 한 곳인 삼성재가 나왔다. 삼성재는 자신이 생활하면서 잘못된 건 세 번 반성하라는 뜻에서 삼성재로 명하게 됐다고 한다.
여행자들은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고즈넉한 툇마루에 앉아 삼성재의 의미를 되새겨 보며 삶을 반추해본다.
삼성재와 더불어 또 하나의 깨달음을 주는 곳이 있으니 구사재다. 아홉가지 좋은 생각을 하라는 뜻의 구사재에 앉아보니 오랜 시간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삶의 교훈이 느껴진다.
설봉서원은 앞날을 위한 배움이 가득한 곳이었다.
◇초겨울 정취 가득 품은 영월암
신라 때 고승 의상대사가 북악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영월암은 이천의 또 다른 명소다.
이곳에는 650년 된 나무가 있는데 여기에도 전설이 깃들여 있다. 고려말 조선초기 고승인 나옹대사가 절에서 기도하고 지팡이를 잠깐 꽂아놓고 떠나셨는데 그 지팡이가 자라서 650년 동안 이 영월암을 지켜주고 있다는 것이다.
650년이면 왠지 나무에도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지팡이의 전설이 전해져 올만큼 영월암은 산기슭의 좁은 지형을 해치지 않고 아담하게 자리 잡은 천년고찰이다. 오랜 역사만큼 많은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그 중 마애여래입상은 그 웅장한 모습에 가장 먼저 눈에 띈다. 10m 정도 되는 크기의 바위에 새겨져 있으며 현재 보물 822호로 지정돼 있다.
고려 중기 산악법사가 새겼다고 하는 마애입상은 미륵불로 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이 많다. 고려 초기에 통일 신라가 무너지면서 삼국 시대에 미륵신앙이 우리나라 전역을 휩쓸었는데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고 미륵 부처님을 모셨다는 것이다.
마애입상을 자세히 보면 천연 바위 위에 인위적인 요소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부처님 얼굴 아래 왼쪽은 바위가 탈락한 점이 인상적이다.
그 부분을 맞춰서 팔을 꺾은 형태로 조각이 돼있는데 자연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살린 것이다.
인위적으로 가미하지 않은 소박한 모습과 마애입상이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점이 의미가 있었다.
민중의 안녕을 지켜내는 수호자로서 부처님을 새긴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이렇듯 영월암은 바위가 있으면 피해가고 굽어있으면 휘어가는 유연함을 품어 자연에 순응하던 선조의 지혜를 전인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 점이야말로 영월암이 천년을 지켜올 수 있었던 힘이 아닐까?
각박한 일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이천으로 함께 떠나볼 일이다.